
작년 이맘때 좀 행복했었다.
코로나는 한창이었지만 내가 샀던 주식이 신나게 올라갔었다.
이제 좀 살림이 펴서 몸과 마음에 여유가 생기려나 기대가 됐다.
더 오를까 봐 한 주도 팔지 못한 주식을 손에 쥐고
여행도 가고 집안의 가구도 바꿨다.
계속 오를 거라 생각했다. 떨어지는 건 남의 집 얘기고
내 종목은 분명 오를 거다.
몇몇 종목을 단타 치다 손절하면서도 그 한 종목에 대대로 내려오는 희망과 앞으로의 미래를 걸었다...(고 하기엔 뭐 한낱 소액투자자였지만)
아무튼
그랬던 주식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.
너무 급등을 했으니 당연한 조정이라고 생각했다.
그래도 이렇게 올랐는데 예전 가격으로 갈리는 절대 없을 거라고 믿었다.
그러나.
최근 그 주식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.
주린이가 하는 일이 뭐 그렇지 싶었지만
익절을 못한 후회,
손절을 못한 자책,
혹독한 경제난으로 잔뜩 쪼그라든 지갑만
떨렁 남아버렸다. 아쉬웠다.
그 주식의 등락과 더불어 나까지 인생의 롤러코스터를 탄 기분이었다.
이것도 나름 인생의 부침인가
하지만 좋은 날은 너무 짧았고 침잠의 기간은 끝도 없네
더 무서운 건 이 막막함이 여기서 끝도 아니고 이제 시작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.
무서워 ㅜㅜ
내 인생은 왜 좋은 날이 없는가
것보다 왜 평탄하지 않은가
법륜스님 같은 분은 이런 질문에 어떤 즉답을 내려주실까
아마 그분은 어쩔 수 없지 뭐 그렇게 태어난걸 어떻게
한마디 하시고는 그래도 그만하길 다행이다.
어디 가서 밥 굶고 빚쟁이가 쫓아오는 것도 아니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하실 것 같다.
그런 긍정도 좋지만 오늘 카톡으로 다른 사람의 프로필을 보다 보니 조금 깨달음? 비슷한 게 생겼다.
생일자 알림 프로그램에 모 방송국 기자인 후배가 떠 있었다.
학교 다닐 때부터 학교 방송국 아나운서를 하던 친구였는데 그 친구는 늘 목소리가 기운차고 바쁜 시간을 쪼개 과생활도 열심히 하는 친구였다.
가끔 우리를 불러다 밥도 해주고
연애도 항상 했었다.
늘 뭔가를 못해도 즐겁고 잘하면 더 즐겁고
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하고 싶은건 일단 도전하는 모습이었다.
생각해보면 늘 기분 좋은 친구였는데
어느샌가 나는 그 친구를 늘 운이 좋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다.
그녀가 이뤄낸 모든 것들이 실력과 노력이 아니라
운이 좋았을 뿐이라고
...... 그것은 당연히 속 좁은 질투였다.
나는 늘 콤플렉스 덩어리였다.
외모도 출신도 학벌도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들이 다
이 세상과 맞지 않다고 여겼다.
맞지 않게 태어난 조각 퍼즐처럼 나는 뭘 해도
이 세상에 알맞게 끼워지기 힘들 거라고
뭐든 포기를 했던 것 같다.
그 후배가 나보다 유별나게 잘나게 태어났을 수도 있다. 하지만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.
그 후배와 나의 차이
그것은 자존감이었던 것 같다.
요즘 너무들 자존감에 대해 많이들 얘기하는 시대다.
유튜브의 심리학자, 처세술 강연자들 등등이 제일 많이, 그리고 쉽게 얘기하는 자존감
사실은 들어도 잘 모르겠다.
아 그렇구나 끄덕이긴 하지만
정작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말이다.
하지만 후배에 대한 기억과 내 자신을 떠올려보면
우리 사이의 차이점은 생활태도에서부터 많이 다르다
자존감은 감정과 인식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
태도에서 나타난다.
그렇기에 그 수많은 전문가들이 연구하고 알려주려 노력하는 것이리라
그렇게 만들어지고 배운 자존감이 인생의 부침을 조절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
고작 주식의 부침에 요동치는 나는 가진 게 그것밖에 없어서이고, 그런 요행과 한방을 바라기에 작은 일에 집중할 수도 노력할 수도 없는 것 같다.
인생 오르막 내리막의 경사를 완만히 하는 일은 행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.
오늘을 열심히 사는 노력과 자존감은 늘 평탄한 삶을 위해 꼭 필요한 것 같다.